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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의 초로 (1)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의 감정같은 것이 있다.내 첫사랑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귀여운 원피스를 입은, 유채꽃이 잘 어울리는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였다. 

그 때는 확실하게 사랑이었다. 지금은 그 비슷한 무언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분명히 알기 위해 나는 초로를 찾아 가고 있다.



10년 전에 나는 종점에 살았다. 

종점이라 함은 정확히는 터미널 전 역을 가리킨다. 버스를 타면 내가 내리는 다음 역이 바로 차량 기지였다. 집에서 나오면 도시도 시골도 아닌 적당한 변두리의 풍경이 있는 곳이었다. 

그 때의 여느 학부모들이 그랬듯, 우리 가족도 어린 나를 한사코 도시 쪽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아빠가 데려다 주시곤 했으나 삼학년이 되면서 나에겐 혼자 버스를 탈 권리와 의무가 주어졌다. 한 살을 더 먹어서는 다니는 학원만 네 개였다. 

보통 8시쯤 끝나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숙제를 봐주시는 과외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그 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점수가 나오면 부모님이 웃었다. 그 나이에 그것 이외의 그 무엇이 중요했을까.

"잘했네, 정말 똑똑하구나." 

"중학교 고등학교가서 1등 하겠네."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던 그 때엔 그 말들이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힘들다는 생각도 못 해봤다. 

초로를 만난 날은 평소보다 몸 상태가 안 좋았다. 평소엔 틀리지 않던 영어 단어시험에서 6개나 틀려 재시험을 보는데, 도저히 외워지지 않아 40분 가량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결국 학원은 줄줄이 밀리고, 개념 설명을 두 번 하게 된 수학 선생은 노골적으로 짜증을 드러냈다. 차라리 결석을 하라는 표정이었다. 

언젠가 숙제를 안 해온 중학생이 상담실에서 '사랑의 매'를 맞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강의실 한 쪽엔 언제나 당구채가 세워져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앉아있었는데도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핸드폰으로는 전화가 12개, 왜 아직 오지 않냐는 엄마의 것을 시작으로 문자가 8개 부재중 표시가 떠 있었다. 집중 안 하냐는 선생의 호통에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수업을 마치고 나서야 '이제 끝났어요' 라고 보냈다. 답장은 '얼른 와.'였다. 

엄마는 절대 통화로는 화내지 않는 분이셨다. 어찌나 현명하신지 본인의 사랑스러운 딸도 목소리뿐이라면 능숙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그 긴장이 탁, 풀리며 나는 잠들어버렸다. 팔꿈치를 타고 올라온 차창의 진동이 옅게 느껴질 즈음이었다.

이번 정류장은 지원 2동 주민센터, 다음 정류장은, 녹동입니다-

아, 한 정류장 지나쳤다. 지금이라도 내려 돌아가는 버스를 타던가, 아니면 아직 한 정류장이니까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과외 선생님과 엄마의 야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코 행복한 휴식은 아니겠지.

벨을 누르기에 잠의 유혹은 너무 강력했고, 버스는 그대로 녹동을 향했다. 

사실 잠이고 뭐고 모두 핑계였던 걸까. 정작 뒤로 멀어져가는 정류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하면 안 될 짓을 했다는 스릴에 팔이 오싹오싹했다. 나무가 점점 많아지자 처음 보는 풍경에 잠이 모두 달아났다. 

겨우 죄책감이 든 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허겁지겁 버스 계단을 딛고 내려가다 발이 엉켜 중심을 잃고 넘어져 떨어지고 말았다. 두 눈을 꼭 감고 덮쳐올 아픔을 기다렸다. 

팔꿈치라도 까지면 앙앙 울어줄 셈이었는데, 폭신하고 달큰한 것이 나를 감쌌다. 

"죽었어?"

그게 내가 처음 들은 초로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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