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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의 초로 (2)

"죽었어?"

맑은 목소리를 울리는 초로는 내 또래 여자아이로 보였다. 진한 샛노란 머리칼과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어서 외국의 아역배우를 떠올리게도 했다. 목걸이에 달린 둥근 보석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몸을 일으키며 멀뚱히 올려다봤다. 

"자, 일어나."

허락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제서야 깨달았지만 바닥이 모두 분홍색 솜사탕으로 되어 있었다. 마치 구름 위에 올라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무려 그곳은, 놀이공원이었다. 그런데도 손을 내미는 초로의 표정은 괴로워보였던 것 같다. 일어난 나의 키를 보고, 그리고 자신의 몸집을 깨닫고는 더욱 미간을 구겼다.

"너같이 어린 애가 벌써 여길 오면 어떡해."

나는 실수라고 변명했다. 초로는 마치 내가 과외 땡땡이 친 것까지 다 간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수라고?"

"너, 너무 졸려서... 어쩔 수 없었어."

겁을 먹은 내가 말을 더듬었다. 초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거야?

"너한테는 설명하기보다 보여 주는 게 빠를 것 같네."

그렇게 손을 잡혀 조금 걸었다. 유령의 집을 지나고 관람차를 뒤로하면 있는 붉은 꽃밭. 꽃잎의 모양이 너무나 섬뜩했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꽃이라기보다 가시나무와 비슷했다. 붉은 잎과 푸른 잎이 잘 구별이 가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행복. 행복을 먹고 자라는 나무야."

초로가 가리킨 곳에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내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은하.' 벌레먹고 시들어 있어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묻기도 전에 초로는 대답했다. 

"나는 이 나무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관리인, 같은 거고."

들은 대로 전하자면, 초로는 오래 전에 자살을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을 했는데, 시간이 멈추듯 공중에 떴고 눈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신을 만난 것이다. 적어도 초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은 초로에게 소원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서 살려달라고 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자살기도는 그렇게 실패하는 것이다.) 초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다른 소원을 빌었다.

"죽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줘."

신은 곤란한 표정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소원은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잃은 행복들을 조금씩 모아서 한 곳에 가둬놓는다. 행복의 형태는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물리적인 형태로 이곳에 쌓인다. 그렇게 인공 천국을 만들었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행복이 죽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천국.

그러니까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포기한 것이 많은 사람들.

나누어 주거나 빼앗긴 것이 많은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불행해질 뿐이었어."

내가 물음표를 띄울 듯한 눈빛을 보냈다. 초로는 아쉬운 듯한 표정이다가 따뜻한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너 같이 어린 애는 처음이야. 재밌게 놀다 가."

더는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마냥 즐거웠다. 

가는 곳마다 사탕과 과자가 있었고, 만화에 나오는 공주님들이 입을 만한 옷이 잔뜩 있었다. 나는 가장 화려한 요정 원피스를 입었다. 굽있는 신발에서는 걸을 때마다 반짝이가 나올 것 같았다. 초로가 가져다 준 장난감 왕관을 쓰고 바이킹을 탔다. 돌고래가 그려진 풍선을 색깔별로 팔목에 묶고 질릴 때까지 회전목마를 탔다. 엄마가 마시지 말라고 한 콜라를 마시고, 보지 말라고 한 만화를 보고 심지어는 숙제 위에 낙서를 했다. 마지막으로 이도 닦지 않은 채 길에 드러누웠다. 실컷 일탈을 즐기곤 깜박 잠들었던 모양인지 눈을 떴을 땐 초로가 옆에 누워있었다. 초로는 나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너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쉬는 것 같아."

"너는 이곳에서 쉬는 게 아니야?"

"김은하, 행복이란 뭘까?"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행복, 행복이란 뭘까. 봄이면 창밖으로 한껏 하늘을 향해 흐드러진 벚꽃, 여름이면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꽁꽁 언 아이스크림, 가을이면 빨강노랑 단풍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향기,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날 아침 눈을 뜨기 전의 그 작은 기대감.

"눈을 뜨기 전에 하루가 기대되는 거. 그게 행복이 아닐까?"

월요일 아침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네, 그런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초로가 소리내어 까르르 웃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를 피워."

초로의 작은 손. 나와 비슷한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어려운 얘기를 하려는 듯 조심히 말을 고르는 초로의 입술 끝이, 붉은 빛을 띤 채 느릿하게 떨렸다.

"아무리 봐도 그게 행복해보이진 않아, 그런데, 그거 말곤 잘 떠오르지 않나 봐. 대부분 정장 차림으로 들어와. 내가 '당신이 쉴 때 하는 걸 하세요.'하면, 담배를 펴.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 중에 가장 일탈에 가까운 게 담배인 걸까. 그럼 나는 '시간은 상관없이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세요.'라고 해. 그러면 반 정도는 잠을 자. 나머지의 인터넷을 하거나 노래를 듣고, 그 나머지는 미친 듯이 뭘 때리거나 부수거나 그래도 하고 싶은 걸 못 찾으면 다시 일을 해.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있잖아요, 공간도 비용도 상관없으니까 즐거운 일을 해봐요.' 거의 울부짖었어. 네 앞에 왔던 손님은 바다에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바다를 만들어줬지. 근데 말릴 틈도 없이 뛰어드는 거야. 풍덩. 철썩. 쏴아. 그런 소리가 나고 아까까지 있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어. 해파리만 수면에 떠오르니까 놀라서 얼른 바다를 없앴지. 

죽고 싶어요. 이제 나는 그만하고 싶어요. 나를 내버려 둬요, 제발.

그렇게 말하는 손님은 엉엉 울고 있었어. 그런데 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울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주제넘는 짓이었지. 그 사람이 안고 있는 괴로움을 나는 모르는 걸.  '괜찮아요. 울어요, 가끔은 우는 것도 도움이 돼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데 괜찮을 거라고 해봤자 희망고문이잖아. 나는 위선자에 불과하고 이 거짓된 천국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키울 뿐이야. 너도 알지, 처음부터 없었던 것보다 있다 없어지는 게 더 힘들다는 것."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없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했다.

"유감이네. 이제 너도 돌아갈 시간인데."

문득 초로의 어깨 너머로 보인 나의 가시나무가 건강해 보였다. 뒤늦게 말뜻을 이해하고 필사적으로 초로를 붙잡으려 했다. 그런데도 공간은 멀게 뒤틀리고 세계는 어두워지며 순식간에 페이드 아웃했다. 목구멍 틈으로 컥, 하는 소리가 튀어나간 듯 했다. 

흔들리는 차창의 진동이 팔꿈치를 타고 턱을 때렸다. 

이번 정류장은, 소태, 다음 정류장은, 지원 2동 주민센터입니다-

눈물이 툭 볼을 타고 떨어졌다. 안내 방송 소리에 얼른 가방을 챙겨 내렸다. 깜깜한 밤거리, 누가 보나 우리 동네였다. 분명히 아까 지나쳤을, 우리 집 정류장. 몽중몽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몇 번이나 잠에 들었던 것 같아 어느 것이 꿈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하게도, 성대의 진동이 글자를 이룬 두 음절이 울렸다.

"초로."

그것이 1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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