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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편백 中


그 전화 이후로 나는 엉망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완벽하고 환상적인 휴가를 위해 아끼고 아꼈던 연차를 당장에 냈다. 

그것도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해 늦어졌고, 자동차를 몰고 가는 길에 뒤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받혔다. 움푹 들어간 뒷범퍼에 관자놀이부터 띵하게 아파왔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어 전화번호만 받고 넘겼다. 내리기 시작한 비가 자동차 유리를 때렸다.

정말 힘겨웠던 건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톨게이트를 지나자 시작된 인고의 시간이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사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생생해졌다. 

뜬금없이 첫 애인이 키웠던 고양이 나비가 떠올랐다. 흔히 고등어라고 부르는 코숏이었다. 

그는 나비가 갓 태어난 시절부터 연약하고 어린 그것에 생명을 주는 어버이이자 신이었다. 

서툴렀던 시절의 그가 참고하던 고양이 기르기 책의, '고양이는 욕구가 충족되면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문구. 다만 그 한줄이 내 눈앞에 선명히 맴돌았다. 

여름, 나비는 성묘가 되자마자 방충망을 쥐어뜯고 집을 나갔다. 그 딴에는 나비가 덥지 않도록 창문을 열어둔 것이었는데. 아아, 배려하는 마음이 나비를 영영 잃게 만들었다. 

나비가 왜 창밖으로 날았는지, 그것은 나비 이외에는 알 수 없다. 그 해 가을, 나비는 지는 단풍 아래 싸늘한 주검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부르는 악취로 사라졌으니 이제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때 창문을 열어두지 말 걸..."

"그건 네 잘못 아냐."

네 잘못은 나비가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거라고 믿은 것이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잘못이 되었어. 

엄마는 편백처럼 살던 분이었다. 

그래서 정말 편백처럼 줄곧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엄마의 실종 전화를 받고 나서야 엄마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 아니, 깨달았어도 변하는 건 없었을 테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은 수 년이나 엄마와 엄마가 있는 편백산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스스로의 모습이 그닥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변 사물들도 그닥 깨끗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결함이 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 비뚤어진다. 사춘기 즈음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 실망을 하게 되는 건. 

보인다. 보이게 된다.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그 민망함과 불편함을 적당히 무시하며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우게 된다. 나는 아직도 사춘기인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차렸던 가게의 간판. 하얀 편백으로 된 글자들은 세월과 비를 맞아 썩어 있었다. 그것 역시도 사랑할 수 없었다.

가게의 불은 꺼져 있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산길로 향했다. 20분쯤 들어가자 우산을 든 인영(人影)이 보였다. 아빠였다. 

"타!" 

저 얼굴에도 주름살이 질 수 있단 걸 몰랐다. 창밖으로 본 아빠는 너무 작았다. 비바람에 젖은 앞머리와 한껏 구겨진 표정이 마치 쇠공을 쏘아올리는 난장이 같았다. 

아빠에겐 평생 여기가 낙원구 행복동이었다. 그런 아빠의 붉은 눈가를 모른 척해줄 정도의 지혜는 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는?"

"산책로 다 뒤져봐도 없다. 이모는 파출소에 신고하러 갔어."

"아이씨..."

낭패였다. 적어도 이 차로는 엄마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 빗내음과 피톤치드로 가득한 저기, 편백숲의 짐승길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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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와 편백 上
#17
나와 편백 下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