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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편백 下 (完)

사족은 에필로그

얼마나, 얼마나 헤맸을까? 거의 한 시간째 자연이 낸 미로를 방황하고 있었다. 거의 라고 하는 것은 아까 넘어져 스마트폰이 먹통이기 때문이다. 아빠를 차에 두고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오직 편백, 지긋지긋한 녹색 나무였다. 너무나도 단조로운 풍경 속에 나는 자연으로, 동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각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오감의 나머지 감각들은 더욱 민감해진다. 처음 느꼈다.

도시 빌딩 숲보다도 획일적인 풍경이었다. 마지막 이성을 붙잡고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하며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가다보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찾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왔다. 내가 처음 가지를 꺾기 시작했던 곳으로. 

실망하기보다 오히려 시원한 맘에 한숨이 나왔다. 해탈에 가까웠다.

어차피 삶은 단조롭고, 어디로 도착할지도 모르는 산길이다. 남산에 걸어둔 사랑의 자물쇠는 지금도 비를 맞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그리도 따지고 재며 가지꺾기만 했을까. 그러니까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버리는 것이다.

고개를 들자 다시 편백이 눈에 들어왔다. 

"좋다 이거야. 죽여봐, 어디."

시쳇말로 악과 깡이라 부르는 그것이 차올랐다. 내일이 되면 다시는 살아 있는 엄마와 만날 수 없다. 그렇게 직감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나도 오늘 죽어버리겠어. 나는 끔찍한 피톤치드의 숲으로 다시 발을 들였다. 아니, 들이려 했다.

크게 낙뢰가 떨어졌다. 온 몸이 저릿할 정도의 굉음이었기에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엄마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오백 살 편백.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며 이 산의 으뜸 볼거리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엄마가 찾아갔다면 분명 거기 뿐이다. 왜 이제야 생각난 걸까?

달렸다. 

"엄마! 있어? 들리면 대답해, 엄마!"

찰나 헉, 하고 숨을 멈추었다. 세상의 종말을 노래하듯 타오르는 붉은 노을. 그 빛 아래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고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눈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엄마는 등을 돌려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깐, 엄마!"

오백 살 편백 쪽이다, 나는 확신하며 그 뒤를 쫓았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몇 년이나 이 산에 살며 기운을 받은 엄마와 '도시인'이었던 나의 차이는 짐작한 것보다 컸다. 엄마는 산길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능숙하게 나무 사이를 헤치며 나아갔다. 속도를 냈다 멈췄다를 반복하다보니 먼저 지친 건 내 쪽이었다. 

땅이 푹 꺼졌다. 그런 감각이었다. 그대로 진흙에 발이 빠지듯 주욱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굴렀다. 뒤통수부터 척추를 타고 사이렌이 울리듯 오싹함이 내달렸다. 머리에 둔탁한 충격, 그대로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토록 원망하던 편백 속에 넘어져 죽는다니 우습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으며 눈을 떴다. 비가 그쳐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세상은 푸르스름하고 안개가 잔뜩 껴있었다. 머릿속은 웅웅 울리고 우비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잔뜩 긁힌 손등을 보아하니 몸도 성치 못할 것이다. 

"완전히 놓쳐버렸군."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관절을 이끌고 도로 일어섰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저 오른발을 왼발 앞에 놓고, 다시 왼발은 오른발 앞에 두었다.

그러자 드디어 그 편백이 눈 앞에 있었다. 오백이라는 숫자에 걸맞는 웅장함을 고고히 뽐내고 있었다. 하늘 끝까지 뻗은 듯한 높이와, 감히 내가 상상하는 것조차 모독일만큼의 세월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그 허리에는 누군가 박아놓은 칼날이 있었다. 아, 깨달았다. 이 편백은 죽었다. 

오래 전에. 누군가가 편백을 해치려했고 편백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죽지 않았다. 한낱 물리적인 나약한 것으로 그는 죽지 않는다. 그가 죽은 것은 자신이 너무 뿌리를 깊게 뻗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 전체의 조화를 중요시 여겼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숭고한 생을 마쳤다.

그런데도 푸른 잎을 떨구지 않고 이 자리에 서있었다. 죽어서도 이 산을 내려다보며 위대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일구어낸 조화로움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그동안 품었던 열등감조차 모두 잃고, 경외심에 휩싸인 한숨을 뱉었다. 시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편백은 인간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나는 편백의 가지 하나만큼도 되지 못한다.

그 격차를 온 눈으로 온몸으로 체험하고 나는 주저앉았다. 묵은 질투가 내려가고 비로소 눈물이 나왔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예에, 예. 나는 죽어 겨우 뼛가죽이 되겠지요. 

"그러니 여기서 죽을 수 없습니다."

편백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는 뒤돌아 해가 뜨는 곳을 향해 걸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 날 변사체로 발견되셨다. 최초 발견자는 아버지와 연줄이 있어 기꺼이 헬기수색을 도와준 경찰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셨던 거겠지. 아버지는 씁쓸히 웃으셨다.

치매이셨다고 한다. 

편백에 대한 집착이 그 초기 증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상당히 느리고 오래 진행된 셈이다. 꽤나 혼자 고생하셨을 것이다. 

편백 관을 짜서 뉘여드리자고 살짝 제안해보았지만, 아버지는 화장을 택하셨다.

"그 여자 자체로 편백이니까 괜찮아."

아버지의 눈동자에 슬픔만큼이나 야릇한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이상하게 설득력있는 말이어서 수긍했다. 어머니의 유골함을 보며, 나는 붉게 타오르던 태양 속 그림자를 떠올렸다. 그 순간에 이미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아버지에게 편백은 힘든 소재일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특히나 라는 뜻이다. 

한달 쯤 지나서 나는 이모와 함께 다시 편백 가게를 열었다. 가장 먼저 때묻은 간판을 고쳤다. 회사 다니면서 모아둔 돈으로 어떻게든 됐다. 어머니 이야기가 소문을 타서인지 매출은 예전같지 않았지만 곧 잊혀질 것이다. 

향기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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